참고 안희정
김동환
0. 안희정이 '위력에 의한 간음 및 추행' 혐의로 넘겨진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다. 재판부는 안희정이 피해자에 대해 위력을 보유했다는 사실(유력 정치인, 도지사)은 인정했으나, 이를 항시 행사해 왔다거나 남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1. 재판부는 이건 판결을 A4 110쪽이 넘는 분량에 담아냈다. 일단 많다. 비슷한 류의 성범죄 판결문에 비해 3~4배 이상 많은 분량이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만큼 재판부도 많은 부담을 가지고 세밀하게 판결했음을 추정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판결 결과에 분노하는 보통 사람들의 감정·추측과는 달리, 양측 진술을 토대로 한 사실 확인 및 현행법의 해석과 관련해 판사의 실수나 실책을 짚어볼 만한 부분은 0에 가까울 것으로 생각한다.
2. 그런데 사람들은 왜 화가 나 있는가. 피해자가 TV에 출연해 얼굴을 드러내고 도움을 요청하는 영상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나도 봤지만 거짓말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스펙타클은 언제나 힘이 세다.
3. 피해자는 실제로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총 4회에 걸쳐 피해를 당한 것으로 법정에서 진술했는데, JTBC와의 최초 인터뷰를 보면 1, 2회에 대한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대신 3, 4회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말한다. 그는 손석희 앵커가 왜 인터뷰에 나오게 되었느냐고 묻자 '미투운동이 터진 이후에도 강제로 성관계를 가지려고 하길래 출연을 결심했다'고 대답한다. 이 때는 4회차다. 이 인터뷰는 둘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답하지 못하는 셈이다.
4.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최초 간음이 어떻게 발생했는지가 중요하다"며 이 지점을 지목한다. 이 사건은 이렇다 할 결정적인 증인이 없는데, 1회 때는 일이 있은 직후 피해자에게 전화로 직접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증인(전임 수행비서)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법정에서는 1회 범죄사실에 대한 피해자와 증인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았다. 익히 알려진대로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한 성범죄 재판에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 법원이 단순히 안희정의 '위력 행사'를 협소하게 해석해서 무죄가 나온 게 아니다.
뉴스룸 인터뷰에서 증언했던 4회와 관련해서는 피해자가 안희정과 주고받은 텔레그램 대화를 스스로 삭제한 일이 결정타가 됐다. 재판부는 "당시 피고인과 피해자가 주고받은 텔레그램 대화는, 피해자가 이 간음 이후 증거를 모으고 고소 등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게 될 때 주요한 증거가 될 것인데도 모두 삭제된 정황 등을 볼 때 피해자 진술에 의문이 가는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전체적으로 그 경위와 정황에 대해 피고인과 피해자의 진술이 불일치한다"고 밝혔다.
뉴스룸 인터뷰에서 증언했던 4회와 관련해서는 피해자가 안희정과 주고받은 텔레그램 대화를 스스로 삭제한 일이 결정타가 됐다. 재판부는 "당시 피고인과 피해자가 주고받은 텔레그램 대화는, 피해자가 이 간음 이후 증거를 모으고 고소 등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게 될 때 주요한 증거가 될 것인데도 모두 삭제된 정황 등을 볼 때 피해자 진술에 의문이 가는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전체적으로 그 경위와 정황에 대해 피고인과 피해자의 진술이 불일치한다"고 밝혔다.
5. 전후 사정이 뭐가 됐건 누군가가 한 순간이라도 하기 싫은 사람을 섹스하게 했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혹여 안희정과 피해자의 관계가 처음에는 자발적인 동기로 시작됐다 할지라도 2, 3, 4회에는 성폭행이었을 수 있다. 다만 지금의 국내법은 폭행 전후 상황에서 피해자가 일관되게 거부 의사를 드러내지 않았다면 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판사 역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은 성적자기결정권을 보호법익으로 한다"면서 "범행 당시의 제반 사정에 비춰 위력의 행사에 의해 피해자의 자유의사가 제압될 정도에 이르러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결과가 발생해야 처벌 가능한 범죄"라고 말한다. 설령 피해자의 진술처럼 위력이 확실한 상급자가 존재하고, 차마 거부 의사를 밝히지는 못했지만 속으로는 정말 싫은 상황이 있었다 하더라도 현재 우리 성폭력 범죄 처벌 체계 아래서는 이런 사정만으로 상급자의 행위를 성폭력이라고 볼수 없다는 것이다.
6. 법은 사회의 주요한 골격 중 하나다. 많은 사람이 여기에 적응해 살아가고 있다. 판사가 날고 기어봐야 현행법을 상당히 뛰어넘는 결론을 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사람을 위해 지금껏 유지해오던 뼈대를 바꿀수는 없다. 그러나 '미투'라는 사회적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110쪽이 넘는 판결문을 쓰고 그 안에 관련 입법의 필요성을 적시했다고 생각한다. 미투운동 이후 한국 사회는 변화하고 있다. 성장한 사회를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뼈대는 공동체를 옥죄는 굴레가 될 뿐이다.
최종적으로 안희정 사건이 어떻게 풀려갈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은 점점 명징해져 온다. 여성들이 이 일로 좌절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회는 변화한다. 안희정의 무죄는 미투 운동의 실패가 아니다.
+ 안희정 건이 미투운동의 실패는 아니더라도 뉴스룸의 실패임은 명확해보인다. 오늘 저녁 뉴스룸이 궁금하다.